소셜미디어? 습관이자 약속이다.

POSTED BY TKIM on Aug 11, 2010 (0)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행위는 ‘눈여겨 볼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순간부터 꼬리에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확장(확산)성”이라는 장점이 있다. 더군다나 웹(Web)에 접근이 용이해졌고, 많은 이들은 그를 통해 “Whenever + Wherever” 라는 ‘권리’를 챙겼다. 그 권리는 긍정과 부정적 양방으로 굉장한 힘을 자랑한다. 또한 힘과 시간과 절대비례하여 결과가 발생되는 것이 삽시간에 가능하다는 것은 이제 모르는 이가 간첩일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이들에게 “Social” 이라는 단어는 매우 낯설다. Facebook이나 Twitter 등의 툴이 어렵게 느껴진다는 디지네이티브들도 상당하다. 다른 방향으로 해석을 하자면 이는 아직 “안착 초기단계”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특히나 우리 한국에서는 말이다. 아직도 많은 세미나와 컨퍼런스에서는 소셜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핵심키워드로 입문에 맞춘 강연들이 많이 이루어 지고 있다. 소셜미디어에 발을 담군 기업들의 성공 사례들이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강연장에서 소개 되어질 지 모르는 일이다.

앞서 언급했던 Whenever + Wherever라는 권리의 힘과 시간은 비례한다는 부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이같은 공식이 기업이 예상치 못한던 부분에 안좋게 적용된다면 그로 인해 입게 되는 타격은 “무시하고 넘어갈 찌질한 인터넷 댓글”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네슬레(Nestlé)사의 자연파괴적 생산방식을 겨냥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Greenpeace)의 캠페인이 그 공식이 적용된 사례중 하나이며, 도미노피자(Domino’s)유나이티드 항공사(United Airlines)들 역시 마찬가지의 공식이 적용된 예라고 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의 장점은 “확장성“이라고 언급하였다. 더욱 소셜미디어가 무서운 것은 ‘그저 그렇게 대강 얼버무려도’ 반은 먹고 들어갔던 사회와 기업 그리고 개인의 수많은 부분들이 허리끈을 조여주었다는 것이다. 마치 ‘칼’과 같다. 잘 쓰면 유용하지만 ‘잘못쓰면’ 혹은 ‘잘 못쓰면’ 속된 말로 한방에 훅 가는 지름길이 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소셜미디어라는 툴과 관련하여 성공이나 실패의 ‘법칙’이라는 말이 아직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셜미디어를 통한 운영은 습관이자 약속이다. 알면서도 아리송한 몇 가지 스스로의 ‘습관과 약속’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1) 우리도 한번 저런거!
소셜미디어의 문을 열게 될 어느 기업에도 절대! 군대의 법칙이 적용 되어서는 아니된다. 사단장 입에서 ’우리도 이런거 한번…’ 이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없던 잔디 연병장이 생기는 법칙은 피해야 한다. 소셜미디어는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한 약속이다. ’친구따라 강남’ 가는 것 보다 많은 준비와 사전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강남은 묻어가는 것이 아니라 혼자 걸음으로 가는 것. 실제로 이름만으로도 친숙한 기업들의 황량하고도 있으니만 못한 트위터/페이스북 페이지를 볼 때 안타깝다. ’우리도 한번 이런것’이 아닌 ‘우리는 이런것’ 으로 조금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2) 사람의 눈으로 모니터링?
대학교 재학시 교양 과목을 들을 때 이야기다. 시험기간에도 스케쥴이 널널한 한 친구 녀석이 있었다. 주변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 친구는 고등학교때부터 시험때만 되면 ‘매의 눈‘으로 시험지를 바라본다고 했다. 시선은 시험지를 향해있지만 180도 반경에 앉은 학우들의 시험지를 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험에 응할 때 ‘준비’에 대한 압박을 느껴본 적 없이 자랐다는… 모니터링은 ‘매의 눈’으로 해야 한다. 이는 기업의 내외에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자고로 우리는 Web 2.0 시대에 디지털 시민권자들이다. “표정들 왜그래요? 땀 흘려가면서 독수리타법으로 안녕하세요 쳐놓고 인사 소개 충분히 했구나 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라는 말 나오면 아니된다. 던진것은 돌아오고, 던지지 않는 것도 어디선가 던진 것처럼 돌아온다. 단독적인 진행은 ‘PC통신’시대에나 하던 것 이다. 촉을 세운 모니터링은 결국 개선의 핵심 기능이다. 시험지만 바라보는 사람의 눈만으로는 모니터링이 구실을 하지 못한다.

(3) 눈높이를 맞추자
과거 모 기업이 TV에서 ‘고객과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항상 굽이 낮은 구두를 신고 다닌답니다.‘ 라는 내용의 광고를 내보낸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 슬로건과 소셜미디어의 성격이 상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나 기업이 고객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둥글둥글한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는지의 여부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도 불러올 수 있다.

(4) 스스로에게 묻자, am I social enough? (나는 충분히 소셜한가?)
소셜네트워크가 일상이 되며 한 가지 본인에 대해 다시금 느낀 것이 하나 있다. Web 상에서 벌어지는 소셜관계에 있어서는 붙임성이나 모나지 않은 인성이 덕목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플랫폼을 통한 ‘소통작업’이 주가 되는 소셜미디어라는 놀이터에서 재미있게 노는 방법은 빠르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 지인과의 관계가 몇분의 전화 한 통으로 이어지고 기약없는 약속(언제 만나서 술이나 한 잔하자)이 대화를 매듭지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앞서 말한 ‘매의 눈 모니터링 + 눈높이 + 관계적 덕목’과 더불어 빠르고 부지런한 Action과 각 플랫폼에서의 일관된 모습이 ‘충분히 소셜’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5) 상황에 맞는 요원
전세계적으로 일자리 창출은 많은 젊은 이들에게 마른땅에 소나기 같은 소식이다. 지난 해 초 미국내 피자헛에서 공고했던 “피자헛 트위터 인턴채용(소위 트윗턴)”도 어떠한 측면에서는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난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비록 140자 내외의 단어나 글자를 딸랑 남기는 일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이는 피자헛이 소셜미디어의 잠재력을 중요하지 않게 평가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일종의 글자광고도구 정도로 트위터를 여겼던 것… 더 나아가 피자헛의 내부적인 사항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트윗턴이 이러한 공적 ‘소통 업무’를 도맡아 할 수 있겠냐는 비난이 쇄도했다. 또한 회사의 완전한 소속원이 아니기 때문에 트윗턴의 판단이 브랜드 이미지를 변질 시킬수도 있으며 기업과 고객의 관계가 아닌 기업이 고용한 어느 한 개인과 고객이라는 이상한 관계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 깔끔한 소통으로 끝날 것일이 논쟁이 될 수도 있으며 그러한 현상들을 통해 브랜드가 가라앉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기업의 입과 소리가 되는 직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

(6) 사례가 현존하는 교과서
앞 부분에 지금은 ‘안착 초기단계’라고 언급했다. 그러한 시점에 접하게 되는 ‘실패사례들’이 곧 교과서라고 하겠다. 소셜미디어에 전문적으로 익숙한 이도 많지 않으며 따라서 그만큼 위기관리능력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례들을 토대로 지향(志向) 할것과 지양(止揚) 할 것을 확실히 구분해 나가는 연습이 바로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방식이며, 곧 교육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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